무제 _ ep. 갑자기 고백
강기린
2021.07.16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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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갑자기 고백
난 조건없이 사랑하기엔 어리지 않았고,
연애이외의 즐거운 일들에 더 집중했었고,
벅찬 현실과 싸우기도 버거웠었다.
내 돋아나있는 까칠함에 그와는 벽을 두고 지냈다.
그리고 시간에 지남에 따라 그 벽에 금이 나고 있다는 건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만날 일은 절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화에 거침이 없었다.
밝아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어두운 이야기...
감정기복이 심한 나...
지금 내 궁핍한 처지...
그럼에도 하고싶은 일에 대해 갈구하는 마음...
부모와 친구에게도 꺼내지 못한 비밀들을 적나라하게 털어놓았다.
그는 부담스러울수도 있는 그 이야기들을 조용하게 들어주었다.
그에게 한 이야기들을 되새겨보니, 나는 그에게 여자이길 포기했던 걸지도 모른다.
그는 거부감도 없었고, 호들갑스럽게 반응하지도 않았고 이야기 후에 오는 말들을 다정했다.
가끔은 내가 덤덤하게 꺼내는 내 과거들을 나보다 더 아파하면서 듣기도 했다.
좋았다.
그래서 더더욱 그를 만나고 싶지 않았었다.
만나게되면 이제 더이상 이야기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나는 이 연인도 친구도 아닌 애매한 상태가 계속 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오고가는 대화속에서 나는 순수하고 순진한 그를 놀리기 좋아했는데
야한 농담과 집요한 되묻기를 주무기로 그를 놀렸다.
그날도 열심히 그를 놀리고 있었다.
"그래서 너는 나랑 통화 왜 하는데?"
"아니, 뭐… 그냥 통화하고 얘기하는게 재밌으니까..."
그의 반응이 귀여워서, 나는 집요하게 계속 물었다.
"아, 재미있어서 졸린데도 안 끊고 고집까지 피면서 전화한다고?"
"아니… 그런게 아니고..."
그는 말끝을 흐렸고, 나는 넘어가주지 않았다.
"응?? 뭐라고?? 하나도 안 들리는거 같은데??"
"……좋아하니까!"
내 계속되는 물음에 그가 스스로도 당황할만한 말을 내뱉었다.
나는 잠시 당황스러웠지만 어렴풋이 들릴듯 말듯했던 말을 다시 듣기위해 질문을 이어갔다.
"응? 뭐가 좋다고?"
"누나랑 통화하는게 좋다고..."
"뭐야~ 나랑 통화하는게 왜 좋은데?"
"아까 뭐라고 말 했던거 같은데?"
"뭘 좋아한다고?"
"누나… 누나 좋아한다고......"
나는 대장부처럼 호탕하게 웃었다.
그의 고백으로 인해 우리 사이에 변화가 생길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땐 편하게 웃을 수 있었다.
몇일 뒤 일어날 일은 생각치도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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